37년 (37年)

37년 (37年)

  • 流派:Pop 流行
  • 语种:韩语
  • 发行时间:2016-02-24
  • 类型:录音室专辑

简介

정미조, 여왕의 귀환 / 강헌 (음악평론가) 노래 또한 시대의 산물이지만 종종, 아니 아주 가끔 시대를 초월하기도 한다. 1922년 배재고보생이던 소월 김정식이 ‘개벽’에 발표했던 시 ‘개여울’은 1965년 KBS 소속 작곡가였던 이희목이 선율을 붙이면서 노래로 거듭난다. 이 노래의 첫 주인은 역시 KBS 전속가수였던 김정희. 그의 방송 녹음 트랙은 1966년 라디오를 통해 꽤 주목을 받았고 이듬해인 1967년 송춘희, 한명숙 등과의 컴필레이션 앨범에도 수록되었지만 당시 이미자와 남진, 나훈아, 배호 등에 의해 폭발적으로 재점화되었던 트로트 붐에 밀려 순식간에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나고 만다. 대중음악의 시대에 만들어진 거의 대부분의 노래는 어느 틈엔가 잊혀지고 사라지는 숙명을 피할 수 없다. ‘개여울’ 역시 반짝 유행 후 영원한 하관(下棺)이라는 통상적인 궤적을 따르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5년 뒤 막 이화여대를 졸업한 한 신인 여가수의 데뷔 앨범을 통해 이 노래는 한국대중음악사의 불멸(不滅)이 되었다. 이 사랑스럽고 우아하며 격조 넘치는 여성 보컬리스트는 이 노래 한 곡으로 정상에 군림했으며, 그 이후로 7년간 여왕의 권좌에 머물다 또 다른 꿈을 위해 스스로 왕관을 벗고 내려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37년이 흘렀다. 정미조(鄭美朝)라는 이름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기억 속에서 곱게 풍화되었지만 ‘개여울’은 심수봉(2005), 적우(2006), 말로(2010) 등 트로트에서 팝, 재즈에 이르는 장르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새로운 세기에도 여전히 리메이크되었다. 이들 외에도 1980년대부터 숱한 뮤지션들이 즐겨 이 노래를 리메이크 넘버로 채택했지만, 그 기나긴 리스트 중에서 깜짝 놀랄 만한 장면은 아마도 2008년 정지우 감독의 영화 ‘모던 보이’에서 여주인공 김혜수가 극중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일 것이다. 이 영화는 이 노래가 탄생하기 삼십년쯤 전인 식민지 시대의 경성이 배경이다. 하지만 마치 모던 보이, 모던 걸의 1930년대 경성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시대를 넘어선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아무리 시간을 되돌린대도, 그리고 앞으로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흐른대도 ‘개여울’의 진정한 주인은 정미조임은 명백하다. 그만이 이 노래가 품고 있는 한국의 시정, 이 노래가 분만하는 예술적 품격, 이 노래가 필요로 하는 음과 음 사이의 순수하고 청초한 뉘앙스를 완벽하게 구현했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음악사를 수놓은 디바의 계보에서 상대적으로 짧은 활동 기간과 상대적으로 빈약한 디스코그래피에도 불구하고 그가 7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디바로 불리기에 손색없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시정과 품격, 그리고 뉘앙스가 그에 이르러 비로소 구현된 까닭이다. 1970년대는 한국 현대사 뿐만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사 또한 거대한 전환기였다. 개발도상국으로의 도약과 독재정권의 어둠이 교차하는 가운데 대학가를 중심으로 자유주의의 바람이 일고 있었고 서구 문화의 상륙과 토착화가 물밀듯이 진행되었다. 정미조가 데뷔하기 일년 전인 ‘아침이슬’과 함께 등장한 양희은은 바로 이 시대 청년문화의 에너지를 상징하는 목소리일 것이다. 그의 단호하고 또렷한 발성은 비애와 영탄으로 얼룩진 전시대 여성 보컬들의 비극적인 그늘을 단숨에 거둬버렸다. 그는 김민기 혹은 이주원 같은 대학가의 젊은 작곡가들과 결합하며 한복치마와 반짝이 드레스 대신 커트머리에 청바지와 운동화를 신고 기성 세대의 문화와 결별했다. 이에 비해 한발짝 뒤에 등장한 정미조는 ‘개여울’의 흔적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앞 세대의 유산을 계승하면서 여기에 그 전엔 결코 포착되지 않았던 예술적 격조를 음악적으로 우아하게 형상화한다. 정미조 이전 60년대에도 명문대 출신의 이른바 ‘학사가수’는 없지 않았다. 특히 여성 연예인에게는 가혹했던 쇼 비즈니스의 정글에서 정미조는 자신의 이미지를 남용하거나 탕진하지 않고 고고하게 자신의 품격을 지켰다. 그의 실질적인 데뷔곡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운 생각’부터 그의 시대를 마감하는 1978년 가을 동경국제가요제 출품곡 ‘아, 사랑아’(묘하게도 이 두 곡 모두 김기웅 작곡이다)에 이르기까지 패티김이 만들어낸 ‘대형 가수’의 풍모를 지니면서도 동양적인 섬세한 여백을 동시에 그려내는 완벽한 가창력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의 질적 성장을 또 다른 한 축에서 증명했다. 그러나 품격만으로 정미조라는 여성 뮤지션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아쉬움이 크다. 보컬리스트로서의 그의 위대함은 탁월한 곡 해석 능력과 드라마틱한 구축 능력, 그리고 팔색조와 같은 다양한 음색의 창조 능력에서 나온다. 그는 대형 가수로서의 기본적인 품목인 클래식한 성량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읊조리는 듯한 시적 표현(‘휘파람을 부세요’의 전반부)과 슈거팝적인 달콤하고 경쾌한 표현(‘사랑의 계절’ 같은 노래가 그렇다)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표현의 스펙트럼이 흐트러지지 않고 일관되게 중심을 유지한다는 것이야말로 정미조만이 지니고 있는 매혹의 원천이다. 그런 그가 ‘개여울’ 이후 가장 빛나는 고갱이를 창조했던 순간은 70년대 청년문화의 기수들과의 음악적 조우였다. 그는 청년문화의 광휘가 극점에 다다랐던 1975년과 1976년 송창식과 ‘불꽃’으로 만나고 이장희와 ‘휘파람을 부세요’로 만났으며 윤형주와 ‘그리운 모습’으로 만났다. 정미조는 이들의 텍스트를 마치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파트너처럼 완벽하게, 아니 통기타 진영에서는 만날 수 없는 고혹적인 마스터피스로 만들며 역시 불멸의 트랙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방점을 찍었다. 파리7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정미조는 화가로서 그리고 대학의 교수로서 그의 두 번째 생애를 치열하게 보냈고 교수로서 정년도 맞았다. 육십대 중반을 훌쩍 넘기며 그의 인생3라운드의 종이 울렸고, 37년만에 다시 음악인으로 이렇게 문득 돌아왔다. 이 역사적인 컴백 앨범의 동행자는 손성제와 이주엽이다. 이 앨범 수록곡의 대부분의 작곡과 편곡 연주를 맡은 프로듀서 손성제는 작곡가로 출발해 재즈 색소포니스트까지 겸하고 있는, 현재 한국 재즈계를 이끌고 있는 리더 중의 한 사람이며 이주엽은 재즈 디바인 말로와 재즈 기타리스트 박주원, 하모니카 연주자인 전제덕의 제작자이면서 작사가이기도 하다. 이 컴백 앨범은 그저 옛 히트곡을 반추하는 황혼의 앨범이 아니다. ‘개여울’과 ‘휘파람을 부세요’ 외 11곡은 모두 인생 3라운드를 시작하는 정미조를 위한 신곡이며 이 두 동행자들의 치열한 뮤지션쉽을 감안할 때 결코 옛 명성과 어정쩡하게 타협한 기획 상품은 더더욱 아니다. 앨범은 1972년에 발표했던 그 역사적 ‘개여울’을 새롭게 호출하는 것으로 문을 연다. 김은영의 피아노와 프로듀서 손성제의 배이스 클라리넷 만으로 이루어진 이 2016년 버전은 44년이라는 인간의 시간에 대해 숙고를 하게 만들 만큼, 본인에 의한 걸작 리메이크 트랙이다. 진정한 숙성의 향기가 여백 속에 그득하다. 오래된 와인이 훌륭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극히 소수의 명가의 와인만이 기나긴 숙성을 견뎌내고 범접할 수 없는 품격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어지는 트랙 ‘귀로’를 구성하는 클래식 기타와 현악의 고요한 성찰 위로 살며시 등장하는 정미조의 목소리는 바로 어제 은퇴했다 돌아온 것 같은 싱그러움이 있다. 정적과 함께 사라지는 마지막 문장 ‘먼 길을 돌아 처음으로…’에서 우리는 손쉽게 무장해제된다. 앨범의 전편을 가로지르며 활약하는 고상지의 반도네온과 함께 본격적으로 열기가 살아나는 세 번째 트랙 ‘인생은 아름다워’부터는 탱고와 보사노바 등 무르익은 라틴 사운드로 거듭난 정미조의 새로운 음악 풍경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37년만이라는 어색한 낯섬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이주엽 작사• 손성제 작곡으로 이루어진 7번 트랙 ‘낙타’는 한껏 목청을 푼 정미조의 목소리가 삼각편대를 이룬, 이 앨범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백미와 같은 트랙이다. 반도네온과 피아노를 중심으로 이룬 재즈 쿼텟의 하모니 또한 마치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파트너처럼 자연스럽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밤이다. 아이돌 그룹의 일방통행으로 한국 대중음악이 규정된 지 오래인, 이 풍요 속의 폐허로 정미조가 돌아왔다. 그의 이 노래들은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방과 전쟁 그리고 4.19와 5.16 어디쯤엔가 태어나서 삶의 반환점을 이미 통과한 허허로운 세대들에게 다시 한번 자신의 시대를 음미하게 하고 나아가 새로운 인생에 대한 반전의 판타지를 이 앨범이 일구어줄지 모른다. 이들 세대가 어느 틈엔가 잃어버린 바로 그 품격의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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