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介
[무인도 같은 세상에 띄워보내는 단식광대의 '유리병편지'] '단식광대'는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홍철민과 보컬 구자랑으로 구성된 2인조 밴드로 지난 2008년에 처음 결성되었다. 어느덧 결성 10년 차의 인디뮤직 밴드이지만, 대중에게는 여전히 무명에 가깝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 2016년 150여개 팀이 참가해 치열한 경쟁을 치른 제2회 인천평화창작가요제에서 세월호 참사를 기리기 위해 만든 노래 [새벽달]로 당당히 대상을 수상하며 자신들의 음악성을 세상에 증명해 보였다. 내가 이 밴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2014년이니 어느덧 4년째다. 당시 이 밴드의 음악을 처음 들었음에도 곧바로 이름을 기억하게 된 것은 카프카 말년의 단편소설 「단식광대(Ein Hungerkunstler)」에서 따온 특이한 그룹명 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관객의 감탄을 자아내기 위해 스스로 짐승우리에 갇힌 채 단식을 감행하다 죽은 어떤 예술가의 이야기이다. 처음 단식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관객들이 밤낮으로 찾아와 지켜볼 정도로 관심을 기울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들은 더 이상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지만, 단식광대는 스스로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단식을 멈추지 않는다. 이 무렵의 카프카는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 결핵을 앓아 음식조차 제대로 삼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아무 것도 생산할 수 없으며, 비일상적이고, 반사회적일 수밖에 없는 예술의 본질, 예술가의 숙명에 대해 묻고 있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단식광대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굶기를 멈추지 않은 이유, 카프카가 펜을 놓지 않은 이유는 세상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단식광대는 예술가, 단식은 예술 행위였던 셈이다. 한편에선 K-Pop의 세계화를, 다른 한편에선 홍대로 대표되는 인디뮤직씬의 다양성을 이야기하지만, 한국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 상업적이지 않은 진지한 음악을 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고집쟁이가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일이다. 단식광대 역시 인디씬의 다른 밴드들과 마찬가지로 숱한 우여곡절과 구성원의 이탈을 거치며 모던록을 바탕으로 포크가 가미된 음악적 컬러를 지닌 그룹의 면모를 이루게 되었다. '단식광대'가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노래하는 일을 멈추지 않은 것 역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리더 홍철민은 중학 시절 처음 기타를 접한 이후 고등학교 밴드를 거쳐 대학에서 민중가요 노래패로 활동하며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었지만, 음악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한 번도 놓은 적이 없었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 역시 삶의 고단함,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서글픔, 함께 살아가고 싶은 세상의 모습을 고민하며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건져 올린 멜로디와 가사들이다. 본래 미술전공자였던 '단식광대'의 보컬리스트 구자랑은 1970년대를 풍미했던 브리티시 프로그레시브록 밴드 르네상스(Renaissance)의 보컬리스트 애니 해슬렘(Annie Haslam)을 연상시키는 매우 독특한 음색의 소유자이다. 맑고 청아하지만 몽환적인 그의 음색은 2인조 인디밴드라는 단촐한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단식광대'의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첫 번째 곡 [팽이의 감정]은 인천평화창작가요제 대상수상곡 [새벽달]의 작사가인 백인경이 매일 같이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을 팽이에 빗대어 시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홍철민의 어쿠스틱 기타와 세션으로 참가한 키보디스트 유지현, 첼리스트 이혜지가 합세하여 풍성한 선율이 어우러져 무의미하게 반복되기만 하는 생활의 고단함을 달래준다. 두 번째 [황사]는 홍철민의 작사/작곡 능력이 돋보이는 곡으로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 같은 공간에서 뜻을 함께 했던 이들이 황사처럼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띄엄띄엄 말줄임표를 힘겹게 이어가듯 노래하는 구자랑의 보컬을 통해 우리는 세속의 먼지 속에서 길을 찾고자 몸부림치는 이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 모두 아름답지만, 세 번째 [무인도]는 특히 단식광대의 매력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특출한 곡이다. "허공만 맴돌다 제자리로/ 의미도 사라져 제자리로/ 그래도 띄워야겠지 작은 배/ 너에게/ 기적을 바라진 않아 그래도 너에게"를 노래하는 대목에선 소름이 돋는다. 이들이 무인도 같은 세상에 갇힌 채 누군가의 손에 닿을 것을 기대하며 띄워보내는 '유리병편지'가 바로 이번 앨범이란 생각이 들었다. 앞의 세 곡과 달리 가볍고 명징한 인트로가 인상적인 네 번째 곡 [겨울잠]은 '단식광대'가 대중에게 '우리 이런 음악도 할 줄 알아요'라며 수줍게 내보이고 있으며, 마지막 곡 [망중한(忙中閑)]은 모든 말이 사라진 자리에서 잔잔한 피아노와 구자랑의 스캣으로 구성된 위안의 노래이다. '단식광대'는 쉽게 열광하고 금세 망각하는 세상에 저항하는 음악을 하고 있다. 이들의 진지한 음악적 모색이 칼라TV 영상활동가 겸 음악인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김일안의 프로듀싱과 만나 첫 번째 EP앨범으로 발매된다. 세상은 쉽지 않다. 가야할 길은 보이지 않는다. 질문에 대한 응답조차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단식광대는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전성원(문화평론가 / 계간 『황해문화』편집장 / 성공회대 겸임교수) 크레딧 프로듀서: 김일안 기타 : 홍철민 보컬, 코러스 : 구자랑 첼로(팽이의 감정) : 이혜지 키보드(팽이의 감정, 무인도, 겨울잠) : 유지현 피아노(망중한) : 김철민 키보드 : 구자랑 녹음 : 김철민(늘봄 뮤직) 마스터링 : 소노리티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