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介
타인의 어두운 일기장을 훔쳐 보는 것과 같은 21분. 기타리스트 이수륜(Sooryun)의 가장 은밀하고 촘촘한 고독. ‘MONO-011’ 2009년 EBS공감 헬로루키로 선정되며 데뷔, 이후 놀라운 활약을 보여 준 밴드 THE KOXX(칵스) 음악의 중심에는 멤버 이수륜(Sooryun)의 기타가 있었다. 칵스 앨범의 거의 모든 곡에 작곡으로 참여하며 자신의 음악적 세계관을 피력해 온 그는, 놀라운 작곡법뿐만 아니라 독특한 연주 톤과 프레이즈로 기타리스트 이수륜으로서의 색깔을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데뷔 후 국내외 페스티벌에서 가장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 바쁘게 보낸 칵스의 활동이 멤버들의 입대로 잠시 휴식기를 맞으며, 멤버들은 개인의 음악성을 보다 깊이 드러내는 각자의 창작물을 내놓았다. 그 중에서도 2013년 자신의 솔로 앨범 [동화일기]를 발표하며 기존의 팀 활동과는 사뭇 다른 감성을 선보여 평단의 호평을 받은 이수륜은, 그 해 곧바로 프로젝트 그룹 ‘Hommage(오마쥬)’의 작업에 돌입, 즉흥성에 기반을 둔 자유롭고 강렬한 재즈 음악으로 또 한 번 탄성을 자아냈다. 2년간의 군 생활은 개인의 내면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외부와 단절되다시피 한 조직 속에서, 이수륜의 어떤 면은 전에 없이 밝아졌으며 어떤 면은 더욱 깊고 고독해졌다. 스스로 ‘어두움을 해소하기 위한 자위’라고 표현한 [MONO-011]은, 카메라가 켜져 있는 것을 모른 채 즉흥적으로 연주했던 것을 나중에 발견하여 그 순간의 느낌이 좋아 남겨두었던 것이다. 그것을 아무런 편집 과정 없이 그대로 내놓았다. 그의 것 중에서도 ‘날 것’인 셈이다. 곡의 제목도 따로 정하지 않고 녹음 된 트랙 넘버 ‘MONO-011’을 그대로 썼다. 21분37초의 곡 길이를 가감 없이 쓸 것을 고집하며, 이수륜은 ‘영화를 보듯 들어달라’고 말했다. 대면하기 어렵던 자신의 모습을 은밀하고 조용하게 스케치 해 볼 수 있는 좋은 배경이 될 것임은 확실하다. 우리 모두는 어렸을 때, 먼 미래의 자신을 상상하며 슬프거나 초라한 모습을 그리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현재의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며 속이 울렁거리는 순간들이 생긴다. 방향도 목적지도 모른 채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보며 가끔 주저 앉아 버리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난 잘못되지 않았다고,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고, 모든 것은 결국 괜찮을 것이라고, 스스로 자위한다. 그렇게 힘겨운 날들 속에서도 살아있음에 웃는 시간이 늘어간다. 답은 언제나 바뀌고, 시간은 변함없이 흘러간다. 살아있는 모두가 대견하다. 모두가 특별하고, 그러니 사실 ‘나’라고 해서 특별한 건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 혼자 남은 시간, 스스로에 대해 품을 수 있는 의심은 이수륜에게 매우 소중한 고통이자 창작의 양분이 되었다. 도입부의 괴기스럽고 오싹한 사운드는 듣는 이의 가장 원초적인 감성을 자극하여 어딘지 불편한 마음마저 들게 만든다. 곡이 진행 될수록 청자는, 그 불편한 마음을 안은 채로 이수륜 본인의 가장 내밀한 곳으로 끌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타인의 어두운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은 야릇한 기분을 들게 만들 이 곡은, 그렇기 때문에 기타리스트 이수륜의 내면과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