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简介
이선지 [Oscillations] 락다운 시대의 마음의 다양한 진동들을 피아노, 신디사이져, 앰비언트로 빚어낸 미니멀하고 서정적인 아름다움 [라이너노트] 이선지 씨께. 안녕하세요. 비틀스부터 데이비드 보위까지 대놓고 뭉개버린 책, 세계 최초 반어법 명반 소개서이자 문제작 ‘망작들 3’(부제: 당신이 음반을 낼 수 없는 이유)를 쓴 작가 임희윤이라고 합니다. (제목 따라 깔끔하게 망한 책, 이렇게라도 되살려보자고요.) 저는 지금 한국대중음악상 단골 수상자이자 평단이 사랑해마지 않는 재즈 피아니스트 이선지 씨를 찾아 헤매고 있어요. 비슷한 이름을 가지신 죄로 저 좀 도와주실 수 없나요. 그러게 왜 직업까지 겹쳐서…. 악연도 인연이라고 염치없이 부탁만 드리기 전에 귀하의 새 앨범 ‘Oscillations’부터 들어보았어요. 늦여름 어느 날 오후 5시 무렵이었답니다. 하필 소나기도 내렸지요. 귀갓길 녹색 버스 안에서 커다란 헤드폰을 꼈지 뭡니까. 카메라도 없는데 멜로 영화 주인공처럼. 청승맞게요. 그 날씨, 그날 감성에 음악 한번 찰떡이더군요. 몇 년 전 잘나신 사카모토 류이치 씨가 제게 이런 말을 했답니다. “내가 청각이 예민하다보니 새로운 도시에 갈 때마다 그곳의 새소리에 먼저 귀 기울인다. 같은 참새라도 뉴욕과 서울의 참새는 우는 방식이 다르거든.” 편승해 말하자면, 같은 피아니스트라도 저마다 우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네요. 혹시 세기말에 니콜라스 케이지 나온 영화 ‘페이스 오프’를 보셨나요. (그럴 리 없겠지만) 귀하가 만약 귀하의 억지 주장처럼 제가 찾는 그 선지 씨와 동일인이라면, 명반 ‘Song Of April’까지 다섯 장을 낸 재즈 아티스트는 이번에 페이스 오프, 아니, 핑거 오프나 브레인 오프라도 한 모양입니다그려. 껄껄. 왜, ‘Dawn Chorus’나 ‘Suspirium’에 나오는 그렇게 푸르고 눅눅한 목소리 있잖아요. 귀하의 신보 첫 곡 ‘Dawn Song’의 도입부를 듣다 그만 저 톰 요크의 음성이 나오길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말았어요. 새소리로 가득한 청각적 온실에 애틋한 당신의 5연음 오스티나토가 우윳빛 드레스 자락 끌며 문 열고 들어올 때 말예요. 빗방울처럼 부유하는 청명한 신시사이저는 새벽의 이슬인가요. 막스 리히터, 닐스 프람, 올라퍼 아르날즈의 북유럽풍 포스트 미니멀리즘/네오 클래시컬의 서정은 귀하의 방식으로 계속되더군요. 다음 곡 ‘Swell’. 싱그러운 초록빛의 편집증적 리프 사이로 빼꼼 고개 내민 블루 노트 한 음에서 제가 찾는 선지 씨의 그림자 한 뼘을 보기도 했답니다. 설마… 아니겠지요. ‘Crack’에 이르러서야 아차 싶더군요. 차가운 톤 너머에 일렁이는 유기적인 콘트라베이스와 리얼 드럼, 그리고 정량화를 거부한 피아노 타건의 또렷한 온기…. 어쩌면, 말도 안 되지만 이 낯선 음악의 주인공이 내가 찾는 그 선지 씨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죠. 혼란해진 머릿속을 차창 밖 풍경으로 식히려던 차, 불시에 ‘Lost’가 침공해왔습니다. 앨범의 유일한 보컬 곡. ‘스쳐가는 사람들/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수림의 무심한 듯 투명한 목소리, 청초한 선율에 팽팽했던 마음 속 줄 하나가 공명하더니 톡 끊어지고 말았답니다. 속수무책 당하고 말았지요. 후반부, 가차 없이 철컹대는 리듬 위로 불현듯 올라탄 절제된 유려함의 피아노 솔로에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더욱이 이어진 곡 ‘Let It Flow’는 앨범에서 가장 재즈적인 어프로치를 보여주네요. 그렇습니다. 고백컨대 귀하는 아마 제가 찾는 그 선지 씨가 맞을 겁니다. 재즈가 지닌 난해하고 뭔가 있어 보이는 화성, 비르투오소적 연주기술을 훌훌 벗어낸 뒤 이렇게 미니멀한 미학과 적정량의 앰비언트만 탑재해 백의종군하는 당신에게 대체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까요. 정확히 말하면 용기와 아름다움이었겠죠. 네. 이선지 6집 ‘Oscillations’는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후반부는 점입가경. 숲 속 생명체들의 파닥거림을 악기의 입체감으로 표현한 ‘Forest Song’, 견고한 어쿠스틱 피아노와 몽롱한 옛 신시사이저를 부딪고, 단조와 장조를 대비시키며 빗소리의 등퇴장까지 설계해 드라마를 만든 ‘Night, Rain’은 2021년의 야상곡이 될 겁니다. 풀벌레와 새의 소리가 다시 피아노를 만나 노니는 ‘Epilogue’는 앨범 전체 반복 버튼을 누르게 만드는 수미쌍관이 돼 밝아오는 여명으로서 뒷문에 버티고 섰습디다. 피아노는 타현악기라죠. 표면의 건반을 제아무리 지그시 누른다 해도 저 안에서는 해머가 현을 때려야 소리가 나니까요. 앨범 제목 ‘Oscillations’는 진동이란 뜻입니다. 놀라운 일이죠. 귀하에게 이제 재즈 또는 피아노는 떼려면 뗄 수 있는 존재가 됐다는 것이요. 귀하는 이제 커다란 검은 상자를 벗어나 새로운 진동 법칙을 찾아냈습니다. 그 검은 상자 위에 올라가 계신 게 보이네요. 당신은 그레고르 잠자가 아닙니다. 아름다운 변신은 매혹적입니다. 응원하는 작곡가 선지 씨, 언젠가 무대 위로 재즈 피아니스트 선지 씨도 가끔 소환해주세요. 혹시 드라마나 영화 음악을 담당하신 적이 있던가요. 귀 밝은 제작자 분들, 어서 이분 데려가세요. 가을이 왔네요. 이 앨범은 아무래도 비 오는 날 들어야겠습니다. 당신의 마음에도 부디 오늘 음표의 비가 내리길. 그 붉은 벨벳 심장에 오늘밤 그녀의 해머가 두근대며 충돌하기를. 선지 씨, 범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임희윤(동아일보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