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介
백만불짜리여자의 예쁘고 난폭한 사운드 뎁(deb)의 2집 앨범 <백만불짜리여자> >> 고집스럽게 쌓아온 또 하나의 결과물 1집 [Parallel Moons]를 발표한 뒤 각종 매체의 인터뷰와 음악프로 출연, 클럽과 페스티벌 라이브 등 바쁜 대외활동과 함께 다양한 스튜디오 작업 또한 놓지 않은 싱어송라이터 뎁(deb)의 새 앨범이 발매되었다. 이번 앨범도 단기간의 작업물이 아닌, 1집 이후 곧바로 착수해 오타쿠스러운 태도로 쌓아온 흔적인 곳곳에 보인다. 방향선회보다는 더 치밀한 사운드 메이킹과 컨셉으로 확고한 방향을 보여주는 듯한 2집 <백만불짜리여자>는 ‘백만불짜리 여자 자가육성 성장기’라는 독특한 컨셉트를 갖고 있으며, 섬세하면서도 때로는 과감한 ‘예쁘고 난폭한’ 사운드로 음악인의 성장과 세상을 향한 관점을 은유하고 있다. >> 재즈적 어프로치의 스토리 강한 모던록 모던록이면서도 재즈적 어프로치가 물씬 느껴지는 이번 앨범은 다이내믹한 리듬 위에 오르간, 아코디언,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등 올디한 악기들이 현대적인 곡조와 배치된 점이 특징이다. 게다가 노래 속의 소녀와 그 동경의 대상을 표현하듯, 아이와 어른 사이를 오가는 뎁 특유의 음색이 도회적인 빅밴드의 사운드 위를 오간다. 각 트랙의 사운드는 스토리의 배경이 되는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는데, 가령 <마천루>의 건물 꼭대기 층 이미지는 반복적인 베이스 라인과 몽환적인 신스의 배치로 표현했다. 비슷하게 <지하요새>는 폐쇄된 지하창고의 이미지로, <랑데-브>는 그 모티브가 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처럼 우주에 부유하는 느낌으로 편곡되어있다. 달의 언어로 만들어진 1집 [Parallel Moons]에서 독특한 상상력과 신선한 가사로 9세계의 이야기를 전달하던 그녀가 초인적인 인내심과 집중력으로 더욱 밀도를 높인 2집 <백만불짜리여자>는 특유의 색깔에 열광하던 팬이라면 이번 두 번째 스토리에 호기심을 갖게 될 것이다. >> 뎁 (deb) 보컬과 작사, 작곡, 섬세한 사운드의 프로그래밍의 경험을 쌓아온 실력파 뮤지션 페퍼톤스의 객원 보컬로서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시기 발표한 1집 (2008년 발매)에서 그 캐릭터를 고집스럽고도 뚜렷하게 드러내며 독특한 세계관이 담긴 스토리와 치밀하게 구축된 사운드를 선보인 뎁. 이후 ‘재미있는 음악’이라 자평하며 예쁜 멜로디와 난폭한 리듬의 발란스를 명확히 들려주는 2집 <백만불짜리여자>를 통해 음악과 함께 성장한 그녀의 모습과 차갑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뎁의 음악은 한 싱어송라이터의 목소리이기도 하지만, 섬세하고 탄탄한 프로그래밍을 바탕으로 자신이 쓴 이야기와 배경과 캐릭터를 동시에 엮어내는 앨범으로 된 음악극이기도 하다. - 앨범 수록 곡 설명 01. theme 02. 멋진인생 [theme]에 쓰인 소스와 코드를 조각내서 <멋진인생>에 확장시켜 배치한 놀이 같은 구성의 두 트랙. 03. 소녀여 기타를 잡아라 밴드를 하고 싶다고 이메일로 상담해온 소녀에게 답장을 대신해 만든 노래로 기타와 음악을 시작할때 열병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있다. 04. 마천루 도심한가운데 꼭대기층 로맨스. 반복되는 베이스 라인과 몽환적인 신스의 배치가 둥둥 떠다니는 공간을 들려준다. 05. 내 이름을 불러줘 조근조근 말과 노래사이를 오고가는 가사와 장난스럽고 아기자기한 편곡. 김춘수의[꽃] 06. 모노레일 fan들과의 교류로 만들어진 노래으로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순수한 즐거움으로 했던 초기 페퍼톤스와 데모녹음하던때를 떠올리며 이번에는 반대로 그들이 객원보컬로 참여해 주었다. 07. 백만불짜리 자극을 준 백만불짜리여자들을 향한 찬양 08. 지하요새 미친과학자의 사명에 빚댄 거만과 비굴이 오가는 모노드라마 작업실 주제가. 수록곡 중 가장 난폭발랄. 09. 환절기 사건 뉴스에 나올 일은 없는 환절기를 통과하는 사건들 10. 어디에도 없는 곳 어디에도 없는 곳에서 누구도 아닌 시간을 보내는 노래 11. 그놈의 사랑타령 사랑노래를 비하하듯 부르는‘그놈의 사랑타령’을 제목으로 한 이 곡은 흔한 소재인 만큼 제대로 하기에는 제일 어려운 사랑타령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2. 언제나 내게 감탄의 사람 동경했던 대상이 타성에 길들여져 가는걸 지켜보는 fan 입장의 노래 13. 랑데-브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잠깐의 먼지 같은 동시대 만남에 대한 고마움. 멜로딕의 정점을 연상하며 만든 곡. 칼세이건의 [코스모스] >> ALBUM REVIEW 글쓴이_박주혁 언젠가부터 홍대가 천국의 계단이라도 되서 여신 엑스포라도 유치한 것처럼 웃기게 변해갔는데 이 여신이라는 칭호가 지닌 실제의 퀄리티가 ‘관철동 핑크보살’, ‘거여동 장군선녀’랑 딱히 다를 바 없는 일종의 희화화된 이미지여서 언제부턴가 여신타령이 앞에 붙으면 휘모리장단으로 줄행랑치는 게 좋은 답이 됐는지라 좀 곤란해졌습니다. 사실 저런 작업들이 상당히 고약하거든요. 얄팍한 퀄리티 불량의 판타지를 무책임하게 던져주며 ‘난 달라’라고만 얘기를 하지 음악의 본질적인 기능을 과연 얼마나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주머니 속의 송곳은 튀어나오기 마련이고 닭무리에도 두루미는 살고 있는 법입니다. 게다가 이 경우에 단순히 두루미가 하나뿐이 아니란 사실이 고무적이고 말이지요. 첫 앨범은 2008년에 나왔지만 뎁은 구력이 조금 되는 선수입니다. 공식적인 데뷔는 2004년이고 그간 휴지기에도 쉬지 않고 다양한 작업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리고 음악작업을 지속적으로 선보여 왔습니다. 이 선수의 음악에선 좋았던 시기의 팝스에 관한 외경이 느껴집니다. 너도나도 복고를 외치는 바람에 굿타임 팝스란 단어의 가치가 어쩌면 별 게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만 여기에는 적어도 풍요에 관한 경외와 그것을 최대한 자기화하려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야구로 치자면 타석에 선 김주찬이 아니라 마운드위에 선 장호연이 되고자 하는 뮤지션이라는 얘기입니다. 글쓰는 이가 부끄럽게도 표현이 부족해 다른 이의 말을 빌리자면 제가 가끔 보는 한 일본의 음악잡지에서는 이를 두고 ‘순음악적’이라고도 표현하고 어떤 클래식 평론지에서는 ‘소노리티’라고 하는데 저 표현이 곱게 들어맞습니다. 정직과 성실의 가치를 감히 판별하기는 부담스럽지만 뎁이 들려주는 음악은 그래도 음악적으로 정직하고 성실한 이후에 나올 수 있다고 감히 판단을 해봅니다. 근자의 필드가 조금 과도하게 관대한지라 도금덩어리들도 창피한줄 모르고 굴러다니지만 언젠가 그 도금은 벗겨질 것이고 그 시기가 끝난 후에 남겨질 가능성이 높은 작가 중에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특히 맹목적인 쟈포네스크들 사이에서 뎁의 가치는 좀 더 빛납니다. 추구하는 음악자체가 전형적인 가요튠을 벗어난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에 융성했던 시티 팝의 받아들이고 좀 더 다양한 시도에 주저하지 않았던 어쩌면 근대 일본 대중음악의 마지막 융성기라 할 수 있는 ‘98세대’의 음악과 추구하는 바가 좀 더 닮아 있습니다. 뭉뚱그려 쟈포네스크들 특유의 맹목성이 만들어내는 단순히 일본을 간다하는 느낌이 아니라 정확하게 ‘키치죠지에서’, ‘시부야에서’라는 좀 더 상세한 스폿과 구체성을 띄고 있습니다. 즉 맹신이 아니라 사운드의 흐름을 알고 그걸 취해서 자기라는 필터를 거쳐 내보내고자 하는 노력이 느껴진다는 말입니다. 이런 작업은 2010년에 <솔트 앤드 페퍼>라는 에세이집에 수록된 세 곡이 담긴 짧은 싱글에서 좀 더 구체화됩니다. 도쿄를 주제로 만든 세 곡의 노래는 상냥한 설레임이 담겨있는 재미있는 스도쿠같았습니다. 이렇게 더해도 저렇게 더해도 이 싱글이 즐거움은 변하지 않으며 이어질 2011년의 두 번째 앨범 <백만불짜리여자>의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해가 바뀌고 저 싱글이 던져준 떡밥이 맛있게 숙성된 이 여름에 뎁은 두 번째 앨범을 공개합니다. 이 <백만불짜리여자>는 정서상 관념적인 불안과 우울에 천착하지 않으며 미적지근하지 않은 쾌청함과 기분 좋은 긴장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치 60년대 미국 TV의 메인테마(예를 들어 훌라발루 쇼같은)를 연상시키는 ‘theme’과 접속되는 ‘멋진인생’은 릴 린드프로스나 레나 에릭손같은 고전적인 스웨디시 디바들이 스탠더드이후의 시대에 적응하며 들려주던 고전적인 래어그루브의 튠을 적절하게 차용하고 있습니다. 너무 끈끈하지 않고 약간 매몰차게 돌아서는 그 매서움이 오히려 안달이 나는 순간입니다. 예쁜 전자음이 몽글몽글한 ‘마천루’도 좋습니다. 소실점처럼 재미없는 단어도 이 노래에서는 번쩍하고 황홀한 순간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앞에 얘기했던 시티 팝의 흔적을 녹여낸 곡이라면 이 노래를 들고 싶습니다. ‘모노레일’의 두근거림이 참 좋습니다. 보컬로 참여한 ‘페퍼톤스’의 우엉남스러운 분위기도 좋거니와 비브라폰의 청명한 울림도 좋습니다. 윤종신이 야심차게 남긴 노래 ‘너에게 간다’에 대한 여성의 답가라고 생각하고 싶은 곡입니다. ‘어디에도 없는 곳’는 아련한 분위기가 좋습니다. 멜로트론이란 악기가 원래 그런 악기지만 시간에 환상을 부여하고 소리에 시각을 부여합니다. 환등기마냥 점점이 퍼져가는 음의 파편들이 매력을 높입니다. ‘랑데-브’는 마지막에는 휴식이 보장된다는 점이 좋습니다. 앞으로에 관한 기대, 그리고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습니다. 이제 두 번째 앨범이지만 여기서는 녹록치 않은 구력을 보이며 희화화의 함정을 피해가고 있습니다. 어디라도 그러하듯이 소포모어 징크스는 자주 만나보기 마련인데 첫 앨범과 두 번째 앨범의 사이가 충분했던 만큼 그 함정을 확실히 피해나가고 있습니다. 유유자적하면서도 담아낼 것은 확실히 담아냈고 몰개성하지도 않으며 뮤지션으로서의 성숙함과 좋았던 시기의 유산을 체화시켜서 녹여낸 것이 무엇보다도 높이 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이 앞서기보다 차분히 듣고 싶은 기분이 드는 앨범은 오랜만입니다. 여유로우면서도 어쩐지 좋은 자세를 기분이 나쁘지 않게 강요하는 듯한 음악이 40여분의 러닝타임 내내 지속됩니다. 아마도 대중음악의 본질적인 기능성이란 이런 것이겠지요. 도금의 시대에 24K는 아닐지라도 순도가 높은 귀금속을 만난 듯한 기분은 꽤 오랜만입니다. 안 그래도 쭈글쭈글한 시대에 이런 감성이라면 언제라도 여러분의 플레이 리스트에 등판대기를 시킬 수 있는 체감가치는 백만불을 한참 뛰어넘는 음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디 현명한 제너럴 매니져의 마음으로 이 여름 이 음반을 놓치지 마시길. 2011.07.